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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해주오씨족의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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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18 02:22 조회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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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오씨족의 연원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고려조에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세보고증자료(世譜考證資料)를 보면 그는 지절(志節)과 덕망(德望), 학식(學識)을 고루 갖춘
대학자(大學者)로서 송(宋)나라의 학자(學者)로 우리나라에 와 당시 시중(侍中) 이용섬(李龍暹) ㆍ 남궁원청(南宮元淸) ㆍ 이윤관(李允寬) 등과 함께 사직(社稷) ㆍ 오묘(五廟) ㆍ 국자감(國子監) 등의 창건을 주청(奏請), 성종 9년에 사직(社稷)을, 그리고 이듬해에 태묘(太廟)와 국자감(國子監) 등의 건립을 보았다고 하였다.
1410년 오선경(吳先敬)이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해주오씨족도(海州吳氏族圖)’를 보면, 해주오씨(海州吳氏)의 시조는 오인유(吳仁裕)로서 고려조에 군기감(軍器監)을 지낸 분이라고 하였다.
오인유(吳仁裕)계는 처음 본관(本貫)을 수양(首陽)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해주(海州)가 전에 수양(首陽)이란 별호(別號)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관지 연혁

해주(海州)는 원래 고구려의 내미홀군(內未忽郡)인데 신라 경덕왕 때 폭지(瀑池)로, 고려 태조 때 지금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조 성종초 목(牧)을 설치하였고 얼마 안가서 양주(楊州)와 함께 경기(京畿)의 좌우보(左右輔)로 삼았다.
또 현종 때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되었으며 예종 때는 다시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이후 변화를 거듭하다가 조선조 세조 때 진(鎭)을 두었고 임진왜란 때는 의주파천(義州播遷)
길에 인조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1896년 도청소재지로, 1938년 부(府)로 승격하였고, 1940년 해주항이 개항장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요 성씨로는 오(吳) ㆍ 김(金) ㆍ 노(盧) ㆍ 박(朴) ㆍ 방(邦) ㆍ 왕(王) ㆍ 윤(尹) ㆍ 정(鄭) ㆍ 최(崔)씨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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