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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주요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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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18 02:29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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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보(甲辰譜)’에 의하면 1세 오인유(吳仁裕)의 대부터 황해도 해주(海州)에 세거하였다.


7세 오연총(吳延寵)의 후손은 9세 오성식(吳成式)의 대를 전후해 경기도 양주(楊州)로 옮겨갔고, 오희(吳僖)는 조선건국 후 고려에 대한 절의(節義)를 지켜 전북 익산(益山)에서 적거(謫居)하였다. 오석계(吳碩啓)의 대부터는 평북 영변(寧邊)에 터를 잡았다.


일부가 10세 오건(吳湕)의 대부터 충남 아산군(牙山郡) 신창면(新昌面)에 터를 잡았고, 오방우(吳防祐)의 대에는 경북 장기읍(長鬐邑)을 식읍(食邑)받고 그곳에서 시거(始居)하였다. 오장수(吳長壽)의 대부터는 평남 강서군(江西郡)에 옮겨간 것 같다.


12세 오수(吳守)는 유배지인 함남 안변(安邊)에서 시거(始居)하였고, 오경익(吳京益)의 대부터는 남제주군(南濟州郡) 대정읍(大靜邑)에 터를 잡았다. 오천(吳泉)의 대부터는 경북 밀양(密陽)에서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14세 이후로는 홍주(洪州) ㆍ 서산(瑞山) ㆍ 제천(堤川) ㆍ 신천(信川) ㆍ 김천(金川) ㆍ 장단(長湍) ㆍ 사천(泗川) ㆍ 부여(扶餘) ㆍ 창원(昌原) ㆍ 순천(順天) ㆍ 장성(長城) 등지로 세거지를 확대하였다.


7세 오사정(吳士禎)의 후손은 11세 오연경(吳璉卿)의 대에 병자호란을 피해 전북 남원(南原)으로 옮겨갔다.


7세 오사운(吳士雲)의 아들 오현(吳顯)의 대부터는 용인(龍仁)에서 세거한 것으로 보이며, 일부가 10세 오유종(吳有從)의 대 이후로 충북 진천군(鎭川郡) 이월면(梨月面) 일원에 터를 잡았고, 일부는 11세 오현경(吳賢卿)의 대를 전후해서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제면(陽堤面) 일원에 이거(移居)한 것 같다.


12세 오광국(吳光國)의 대부터는 일부가 평남 평원군(平原郡) 동두면(東頭面)에 터를 잡았으며, 오응길(吳應吉)은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김시민(金時敏)과 함께 진주(晋州)에서 싸우다 순절(殉節)한 후로 자손이 진주(晋州)에서 세거하였다. 오경선(吳慶先)의 대 이후로는경북 장기(長鬐)에 터를 잡았다.


13세 이후로는 안의(安義) ㆍ 평양(平壤) ㆍ 고령(高靈) ㆍ 칠곡(漆谷) ㆍ 대구(大邱) ㆍ 성주(星州) 등지로도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7세 오사렴(吳士廉)의 첫째 아들 오희경(吳希敬)은 양주(楊州)에서 세거하며, 일부가 12세 오세인(吳世仁)의 대에 경산군(慶山郡) 압량면(押梁面) 일원으로 옮겨 갔으며, 13세 이후로는 장단군(長湍郡) 장단면(長湍面), 홍주군(洪州郡) 신북면(新北面), 당진군(唐津郡) 순성면(順城面), 괴산(槐山) 등지에 터를 잡은 것 같다.


들째 아들 오희보(吳希保)의 대부터는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모현면(慕賢面) 일원에 세거하며, 일부가 11세 오옥정(吳玉貞)의 대 이후로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일원에 터를 잡았으며, 13세 이후로는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 공주군(公州郡), 상주군(尙州郡), 성주군(星州郡), 홍주군(洪州郡) 등지로도 옮겨갔다.


7세 오광정(吳光廷)의 후손은 광주(廣州)에서 터를 잡았다. 일부가 8세 오선민(吳善敏)의 대부터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에 세거하며, 거창군(居昌郡) 마리면(馬利面), 함양군(咸陽郡) 안의면(安義面), 단성(丹城), 선녕(宣寧) 등지로 옮겨간 것 같다.


10세 오유종(吳有終)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충남 진산(珍山)으로 귀양간 후로 자손들이 금산군(錦山郡) 추부면(秋富面) 일원에 세거하였다. 13세 이후로는 선산군(善山郡) 옥성면(玉城面), 산청군(山淸郡) 생비량면(生比良面),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澗面) 등지에도 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8세 오선경(吳先敬)의 대 이후로 전남 영광군(靈光郡) 무량면(畝良面) ㆍ 대마면(大馬面) 일원에 세거하였다.


7세 오륙(吳稑)의 후손들은 해주(海州)에서 살며, 일부가 14세 이후로 재녕(載寧) ㆍ 안주(安州) 등지로 옮겨간 것 같다. 7세 오승(吳陞)의 후손은 12세 오일상(吳一尙)의 대를 전후해서 공주군(公州郡) 일원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1930년 당시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충북 청원군(淸原郡) 강서면(江西面), 충남 아산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ㆍ 신창면(新昌面), 금산군(錦山郡) 추부면(秋富面)일원, 전북 임실(任實) ㆍ 순창(淳昌) ㆍ 정읍군(井邑郡), 전남 곡성군(谷城郡), 경북 의성(義城) ㆍ 안동(安東) ㆍ 상주군(尙州郡), 경남 의녕(宜寧) ㆍ 의창(義昌) ㆍ 거창군(居昌郡), 황해도 벽성(碧城) ㆍ 신계(新溪) ㆍ 신천(信川) ㆍ 재녕군(載寧郡)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964년에도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장단군(長湍郡), 양주군(楊州郡), 광주군(廣州郡) 일원, 충북 진천군(鎭川郡) 이월면(梨月面) ㆍ 만승면(萬升面) 일원, 충남 공주(公州) ㆍ 당진(唐津) ㆍ 예산(禮山) ㆍ 영동군(永同郡), 금산군(錦山郡) 추부면(秋富面), 전북 익산(益山) ㆍ 정읍(井邑) ㆍ 김제군(金堤郡), 전남 영광군(靈光郡), 경북 경산(慶山) ㆍ 성주군(星州郡), 경남 거창(居昌) ㆍ 산청(山淸) ㆍ 의녕(宜寧) ㆍ 함안(咸安) ㆍ 창원군(昌原郡) 등지에 세거하였다.


특히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학일리(學日里)는 구봉산(九峰山) ㆍ 쌍암산(雙巖山) ㆍ 문수산(文殊山)이 감싸고 있는 산골 마을로 해주오씨(海州吳氏)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입향조(入鄕祖)는 고려말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오희보(吳希保)인데, 말년에 이 마을에 정착하여 원삼면(遠三面) 전체에 3백여호의 후손을 남겼다.


조선 인조조의 명재상 오윤겸(吳允謙), 대제학 오도일(吳道一), 우의정 오명항(吳命恒)등도 이 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고, ‘병자척화삼학사(丙子斥和三學士)’의 한 사람인 오달제(吳達濟)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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